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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s 프랑스유학/프랑스일기:01~02

프랑스 낭뜨에서의 좋은 추억, 2002년

일전에 보르도로 돌아왔습니다. 2주일을 Nantes 에서 잘 보내구요..

전에 말했던 것 처럼 한국인 입양아 친구 부모님께서 초대해 주셔서 낭트에 가게 되었지요.

친구 이름은 벵상,이구 건축공부하는 19살 친구이고
여동생역시 한국인 입양아이고 13살여자 아이입니다.
이름은 알린.

우선 낭뜨로 가기전에 감동받은 일은
벵상부모님께서 내가 간다고 하니까
도착 1주일전에 내가 쓸방(원래는 창고였던방)을 도배 새로하고
침대도 놓아주고 방으로 만드셨다는 거에요

그리고 낭트까지 갈ㄸㅒ 올때 모두 벵상아버지꼐서 차로 데려다 주셨구요.

우선 짐을 쌀때 한국에 관한 자료 (친구들한테도 다 빌리고)
한보따리,한국에서 준비해왔던 기념품들,단소.한복,김,,

알린과는 피아노를 치면서 더욱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알린이 요즘 한창 학교에서 피아노 배우는데 빠져있어서
제가 개인교습을 좀 해주었지요. 히히
크리스마스 날 가족들을 위한 깜짝쇼(알린과 저의 피아노연주)도 준비 같이하고..

프랑스 가족안에서 크리스마스지내는 방식도 새롭게 느낄수 있었습니다. 우선 집 전체를 그림같이 추리로 장식해 놓았던게 인상이 깊었지요.그리고 전야날 밤 11시에 선물교환식이 있었구요.
저도 미리 준비해간 가족들의 선물들을 전달하고
저도 선물을 받았어요. 24일은 이렇게 보내고 25일은 벵상가족들이 전통적으로 친척들끼리 돌아가면서 자기집에서 저녁 파티를 해서 거기도 갔지요 어림잡아 30여명...오잉 사람들이 벅적벅적
이름을 다 소개 받았는데 누가누군지 원...1살짜리 꼬마부터 80살이신 벵상할아버지까지..이모 이모부 친척조카..
그날 배가 터지도록 먹었지요. 프랑스 전통의 5시간짜리 긴긴 식사시간을 참으면서...히히


여기 방식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고 새해는 친구들과 보내거든요.
그래서 새해축제는 뱅상 친구 집에서 했는데
이날은 좀 힘들게 보냈지요..
이 친구들이 모두모두 끼리끼리만 놀아서원..좀 소외감도 느꼈지요..
하지만 새벽에 디스코택에 가서는 모두 잘 어울려 놀았습니다.
이날 디스코택 들어가는 것만 100프랑이었지요..올랄라..특별한 날이기때문에 더 비쌌습니다.

큰 축제 2가지를 끝내고 그 이후에는 숨을 돌리면서 잘 쉬었습니다.

벵상집을 설명하자면 우선
정원이 3가지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가장끝쪽은 동물을 키우는 곳(토끼,닭)
두번째는 야채를 키우는곳(당근,감자.파....)
가장 집과 가까운 곳의 정원은 나무와 꽃밭 물론 지금은 겨울이니까
꽃은 없었지만 사진을 보니 정말 이쁘더라구요 여름에 풍경

여기서 머물면서 고기를 많이 먹었는데
토끼고기,칠면조,타조,오리,거위,닭,소고기,,

토끼고기와 닭고기는 집에서 키우는 거였지요...으..
계란과 감자요리는 모두모두 집에서 키우는것 오...

벵상아버지는 과자회사에 다니시고 어머니는 시청에서 일하시지요.

그리고 여기 있으면서 저녁식사이후로 자기전까지 매일 텔레지젼을 많이 보아서 프로그램을 다외울 정도가 되었지요.
보르도에서는 텔레비젼을 많이 못보았거든요.

벵상부모님께서는 매일매일 제가 가져간 한국문화 책을 읽으시면서
감탄을 하면서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알린에게는 한국음악시기 가져간거 들려주고 한국어도 가르쳐주었습니다.공기 놀이도 같이 하고 단소부는 법도 가르쳐주고..

어느날 벵상과 알린이 없을때 벵상어머니께서 저에게 입양할때 쓰였던 서류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모르게 막 울었습니다.
사진을보고서였지요.
벵상은 2살때 입양이 되었는데 낭뜨에 오기전에 벵상이 자기는 서울태생이라고 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거더라구요.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대구에서 발견되었고(어느 집 문앞에 버려져있었고)대구경찰서에 있다가.서울경찰서로 이동,그 다음 홀트복지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서류에 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영어로 번역된 서류에는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서울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뱅상이 잘못 알고 있었던것이지요.
한국에서 일을 대충처리했던 거지요.
어린아이지만 자기가 버려졌고 너무 왔다갔다 옮겨지니까 충격을 받아서 서류에 붙어있는 2살짜리 뱅상의 사진을 아기이지만 고통이 가득한 표정이 있었습니다.
이걸보면서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구요.
알린 서류도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서류에는 아버지50살 어머니 40살 언니 고등학생 오빠 회사원이고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서 고아원에 맡긴걸로 나왔는데
영어 번역에는 부모가 없는것로 되어있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서류조작이고 만약에 형편이 나아져서 부모님이 아기를 찾으러 왔는데 벌써 입양되고 없는 상황이 발생되었을지 누가 앎니까...
그리고 한국 이름도 조민아 인데
번역에는 소민아라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가족들이 처음에 소개할때 소민아라고 저한테 말했었지요..

수녀님이 얘전에 말씀하신거에 따르면 홀트복지원에서 서류를 다 조작하고 불태우소 입양하는 곳에서 돈을 받아 먹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서류들을 보면서 그 말씀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정말 슬픈일이지요..

그리고 벵상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지요.
왜 한국인을 입양하셨냐구요..
그때 당시 한국인입양이 가장 쉬웠데요.
그 다음이 필리핀이었고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아기를 못키우면 친척중에 한사람이 그 아이를 키우는게 당연하데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잖아요 사회적 시선도 따갑고...그래서 프랑스는 고아는 있을 수 있지만 입양할 수 있는 아이는 없데요. 왜냐면 입양을 하려면 그 아이의 친척이 아무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래서 한국아이를 입양하게되었고.
더 놀라웠던것은 벵상은 입양당시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입양 동의를 하셨던 것이지요.
지금은 다 낳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 정말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아기가 도착해서는 2살인데도 말을 한마디도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충격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사랑을 받으면서 유치원에서는 여기 프랑스 애들보다 말을 더 잘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은 똑똑하게 월반도 하면서 잘 지내다가
사춘기시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요. 입양아들이 대개 그렇듯...
왜 자기는 부모님과 얼굴이 다르죠?
왜 난 버려졌을까..
이런 의문에 잠기면서..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나쁜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약도 하고
폭력으로 인해 소년원도 가게 되었던거지요.
하지만 지금은 잘 극복하고 대학교에 잘 다지고 있지요.
너무 고마운것은 부모님꼐서 모두 다정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셔서
이런 아이도 사랑으로 계속 보살폈던 거지요..

어느날 벵상어머니께서 붓과 벼루를 내놓으시면서 얘전에 이걸 샀는데 저보고 서예 쓸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어렸을적에 서예학원을 다녔기때문에 쓸수 있다고 했지요.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진호'-뱅상의 한국이름
과 '조민아'-알린
를 화선지에 써서 드렸습니다.
너무 좋아하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