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인간극장'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소인 케이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계속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인 입양아 벵상을 떠올렸다. 이 친구는 나와 태권도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었다. 그때 벵상은 내가 자기가 처음으로 본 한국인이라고 하였고,그 이후 우린 아주 친하게 지냈다. 나는 한국 문화를 많이 가르쳐주고 싶어서,한국어,한국 노래,한국 음식등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내가 있던 보르도에 벵상 말고도 10명이 넘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친구들도 5명정도 였다. 너무 다행인 것은 그들은 모두 프랑스인처럼 잘 살고 있었다.물론 내가 겉으로 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속마음을 다 알 수 없어서 이렇게 쉽게 이야기하는 줄도 모르겠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춘기를 힘겹게 보낸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나는 버려진 존재였다'등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삐뚤게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한명이 벵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벵상은 고된 사춘기를 보내고 어엿한 건축학도의 길을 걷고있는 대학생이 되었다.
처음의 벵상은 내가 한국 부모를 찾고 싶냐는 질문에 단호히 싫다고 했었다. 분노를 느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설명해주면서 점점 부모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서,이제는 자기가 성공해서 한 5년뒤에 한국을 방문하여 부모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는 나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한편으로는 만나게될 친부모(미혼모였기때문에 벵상의 친어머니)의 현재 모습을 보고 놀라지는 안을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벵상이 극복해야 할 일일것이다. 난 프랑스에서 우연히 벵상을 알게되어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었다. 가족의 소중함과 한국의 입양아 문제와 한국이라는 내 조국에대해서 말이다...
이젠 한국도 미혼모 같은 문제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래의 글은 KBS월드넷에 내가 올렸던 글의 일부분이다.-크리스마스 파티에 벵상집에 초대받았을때 있었던일 )
벵상과 알린(벵상 여동생-한국인)이 없을때 벵상어머니께서 저에게 입양할때 쓰였던 서류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모르게 막 울었습니다.
사진을보고서였지요.
벵상은 2살때 입양이 되었는데 낭뜨에 오기전에 벵상이 자기는 서울태생이라고 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거더라구요.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대구에서 발견되었고(어느 집 문앞에 버려져있었고)대구경찰서에 있다가.서울경찰서로 이동,그 다음 홀트복지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서류에 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영어로 번역된 서류에는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서울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뱅상이 잘못 알고 있었던것이지요.
한국에서 일을 대충처리했던 거지요.
어린아이지만 자기가 버려졌고 너무 왔다갔다 옮겨지니까 충격을 받아서 서류에 붙어있는 2살짜리 뱅상의 사진을 아기이지만 고통이 가득한 표정이 있었습니다.
이걸보면서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구요.
알린 서류도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서류에는 아버지50살 어머니 40살 언니 고등학생 오빠 회사원이고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서 고아원에 맡긴걸로 나왔는데
영어 번역에는 부모가 없는것로 되어있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서류조작이고 만약에 형편이 나아져서 부모님이 아기를 찾으러 왔는데 벌써 입양되고 없는 상황이 발생되었을지 누가 앎니까...
그리고 한국 이름도 조민아 인데
번역에는 소민아라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가족들이 처음에 소개할때 소민아라고 저한테 말했었지요..
수녀님이 예전에 말씀하신거에 따르면 홀트복지원에서 서류를 다 조작하고 불태우소 입양하는 곳에서 돈을 받아 먹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서류들을 보면서 그 말씀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정말 슬픈일이지요..
그리고 벵상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지요.
왜 한국인을 입양하셨냐구요..
그때 당시 한국인입양이 가장 쉬웠데요.
그 다음이 필리핀이었고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아기를 못키우면 친척중에 한사람이 그 아이를 키우는게 당연하데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잖아요 사회적 시선도 따갑고...그래서 프랑스는 고아는 있을 수 있지만 입양할 수 있는 아이는 없데요. 왜냐면 입양을 하려면 그 아이의 친척이 아무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래서 한국아이를 입양하게되었고.
더 놀라웠던것은 벵상은 입양당시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입양 동의를 하셨던 것이지요.
지금은 다 낳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 정말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아기가 도착해서는 2살인데도 말을 한마디도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충격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사랑을 받으면서 유치원에서는 여기 프랑스 애들보다 말을 더 잘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은 똑똑하게 월반도 하면서 잘 지내다가
사춘기시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요. 입양아들이 대개 그렇듯...
왜 자기는 부모님과 얼굴이 다르죠?
왜 난 버려졌을까..
이런 의문에 잠기면서..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나쁜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약도 하고
폭력으로 인해 소년원도 가게 되었던거지요.
하지만 지금은 잘 극복하고 대학교에 잘 다지고 있지요.
너무 고마운것은 부모님꼐서 모두 다정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셔서
이런 아이도 사랑으로 계속 보살폈던 거지요..
이들의 공통점은 사춘기를 힘겹게 보낸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나는 버려진 존재였다'등등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삐뚤게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 한명이 벵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벵상은 고된 사춘기를 보내고 어엿한 건축학도의 길을 걷고있는 대학생이 되었다.
처음의 벵상은 내가 한국 부모를 찾고 싶냐는 질문에 단호히 싫다고 했었다. 분노를 느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설명해주면서 점점 부모를 이해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서,이제는 자기가 성공해서 한 5년뒤에 한국을 방문하여 부모를 찾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는 나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한편으로는 만나게될 친부모(미혼모였기때문에 벵상의 친어머니)의 현재 모습을 보고 놀라지는 안을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벵상이 극복해야 할 일일것이다. 난 프랑스에서 우연히 벵상을 알게되어 나를 다시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었다. 가족의 소중함과 한국의 입양아 문제와 한국이라는 내 조국에대해서 말이다...
이젠 한국도 미혼모 같은 문제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래의 글은 KBS월드넷에 내가 올렸던 글의 일부분이다.-크리스마스 파티에 벵상집에 초대받았을때 있었던일 )
벵상과 알린(벵상 여동생-한국인)이 없을때 벵상어머니께서 저에게 입양할때 쓰였던 서류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도모르게 막 울었습니다.
사진을보고서였지요.
벵상은 2살때 입양이 되었는데 낭뜨에 오기전에 벵상이 자기는 서울태생이라고 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거더라구요.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대구에서 발견되었고(어느 집 문앞에 버려져있었고)대구경찰서에 있다가.서울경찰서로 이동,그 다음 홀트복지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서류에 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한국말로 써있는 서류에는 이렇게 되어 있지만 영어로 번역된 서류에는 그냥 아무 설명 없이 서울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뱅상이 잘못 알고 있었던것이지요.
한국에서 일을 대충처리했던 거지요.
어린아이지만 자기가 버려졌고 너무 왔다갔다 옮겨지니까 충격을 받아서 서류에 붙어있는 2살짜리 뱅상의 사진을 아기이지만 고통이 가득한 표정이 있었습니다.
이걸보면서 눈물이 뚝 떨어지더라구요.
알린 서류도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서류에는 아버지50살 어머니 40살 언니 고등학생 오빠 회사원이고 아기를 키울 형편이 아니라서 고아원에 맡긴걸로 나왔는데
영어 번역에는 부모가 없는것로 되어있었습니다.
이건 명백한 서류조작이고 만약에 형편이 나아져서 부모님이 아기를 찾으러 왔는데 벌써 입양되고 없는 상황이 발생되었을지 누가 앎니까...
그리고 한국 이름도 조민아 인데
번역에는 소민아라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가족들이 처음에 소개할때 소민아라고 저한테 말했었지요..
수녀님이 예전에 말씀하신거에 따르면 홀트복지원에서 서류를 다 조작하고 불태우소 입양하는 곳에서 돈을 받아 먹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서류들을 보면서 그 말씀이 떠오르더라구요..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정말 슬픈일이지요..
그리고 벵상 어머니께 여쭈어보았지요.
왜 한국인을 입양하셨냐구요..
그때 당시 한국인입양이 가장 쉬웠데요.
그 다음이 필리핀이었고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아기를 못키우면 친척중에 한사람이 그 아이를 키우는게 당연하데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잖아요 사회적 시선도 따갑고...그래서 프랑스는 고아는 있을 수 있지만 입양할 수 있는 아이는 없데요. 왜냐면 입양을 하려면 그 아이의 친척이 아무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래서 한국아이를 입양하게되었고.
더 놀라웠던것은 벵상은 입양당시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입양 동의를 하셨던 것이지요.
지금은 다 낳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정말 힘들잖아요..
그래서 정말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처음 아기가 도착해서는 2살인데도 말을 한마디도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충격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사랑을 받으면서 유치원에서는 여기 프랑스 애들보다 말을 더 잘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시절은 똑똑하게 월반도 하면서 잘 지내다가
사춘기시절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요. 입양아들이 대개 그렇듯...
왜 자기는 부모님과 얼굴이 다르죠?
왜 난 버려졌을까..
이런 의문에 잠기면서..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은 나쁜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마약도 하고
폭력으로 인해 소년원도 가게 되었던거지요.
하지만 지금은 잘 극복하고 대학교에 잘 다지고 있지요.
너무 고마운것은 부모님꼐서 모두 다정하시고 이해심이 많으셔서
이런 아이도 사랑으로 계속 보살폈던 거지요..
'셀린's 프랑스유학 > 프랑스일기:01~0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에서 만난 나의 특별한 친구들, 2002 (0) | 2010.05.21 |
---|---|
프랑스의 문화적 충격2 작성일:2003.09.07 (0) | 2010.05.21 |
프랑스 문화 충격1 작성일:2003.09.07 (0) | 2010.05.21 |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학교 정보입니다. (0) | 2010.05.21 |
DALF시험 패스 노하우 작성일:2003.11.08 (0) | 2010.05.21 |